댕구산
 
19세기말 서해안으로 들어오는 외세의 칩입을 막기 위해 1878년 인천과 부평연안에 화도진(花島鎭)과 연회진(蓮會鎭)이 조성되었다. 이 곳은 당시 화도진 관할하에 있던 장도포대지(獐島砲臺址)로서 대완구(大碗口)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대완구는 쇠나 돌로 만들어진 탄환을 쏘던 직경 30cm정도의 대포였다. 댕구산은 해발 40m정도 높이의 자그마한 섬인데, 처음에는 장도(獐島)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장도는 글자 그대로 노루섬 이라는 뜻이고, 노루목 또는 노령이라고도 했다. 논현동 111번지 일대인 이곳은 2001년4월 장도포대지(獐島砲臺址) 라는 이름으로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19호로 지정되었다.
 
 
 
장도포대지(獐島砲臺址)
 
이곳은 서해로 들어오는 외적을 막기 위해 고종16년(1879)에 설치된장도포대가 있던 곳이다. 19세기 중엽이후 이양선(모양이 다른 배라는 뜻으로, 주로 조선시대에 외국의 선박을 이르던 말)의 출몰이 빈번해지자, 외적이 서해안을 통해 서울로 진입하는 것을 미리 방지할 수 있도록 해안군사시설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국가 안위의 필요에 따라 고종15년(1878)에 어영대장 신정희와 강화유수 이경하에게 인천. 부평지역에 군사진양과 포대를 세울 것을 명령하였고, 이듬해인 고종16년(1879)에 화도진, 장도포대, 논현포대가 완성되었다. 이러한 방어기지는 고종31년(1894)에 군재개편으로 화도진이 철폐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현재의 포대는 2005년과 2006년에 걸쳐 복원된 것이다. 화도진의 모습을 그린 화도진도에 의하면 원래 장도포대에는 대포를 설치하는 포차 3기가 있었으나, 지형여건으로 인해 2기만 복원했다.
 
 
간략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