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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이외수는 ‘이 한 수’였다

    많이 쓰이는 힐링이나 웰빙 웰다잉이라는 말 모두 마음에 관계된 것

    천이백 기자 (c122103@naver.com)    2013-11-11 07:4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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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루에도 여러 번 쓰는 말 중에 ‘마음’이라는 게 있습니다.

좀 유행가 식으로 표현하면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내 마음을 들었다 놨다, 이 마음 다 바쳐서 당신을 사랑했어요,

마음 주고 몸도 주고(아, 이건 아닌가? 마음 주고 꿈도 주고 눈물 주고 멀어져 갔네, 이게 맞지?)... 이렇게 많이 쓰는 말인데도 마음이 뭐라고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한자어가 아닌 순수한 우리말일수록 뜻을 밝혀 말하기가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쨌든 요즘 사람들은 정확하게 말하기 어려운 그놈의 마음 때문에 고생하고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마음이 상해서, 이 가슴속이 너무도 답답해서, 연암 박지원 식의 표현을 빌리면 마음이 재가 되어 삶의 의욕을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지금 한창 많이 쓰이는 힐링이나 웰빙 웰다잉이라는 말은 모두 마음에 관계된 것입니다.

‘혜민 스님 마음치유 콘서트’처럼 마음을 매개로, 마음을 대상으로, 마음을 이용해서 벌어지는 일과 행사가 참 많습니다.

마음을 소재로 한 책들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서천석의 마음 읽는 시간> <마음을 움직이는 따뜻한 대화법> <마음을 여는 기술> <마음 챙김 명상> <느림보 마음>, 이런 것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최근 출간된 소설가 이외수 씨의 <마음에서 마음으로>는 ‘생각하지 말고 느끼기, 알려 하지 말고 깨닫기’라는 부제를 통해 마음이 무엇인지를 어느 책보다 더 선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말대로라면 마음은 느끼고 깨닫는 존재인 것입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부산에서 서울로 오듯 마음에서 떠나 마음까지 가보라는 것일까, 아니면 마음을 가진 사람끼리의 소통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런 마음에서 저런 마음으로 이행해 다른 사람이 되라는 뜻일까, 아니면 마음이 마음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뜻일까?

이런 책의 제목은 다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거나 애매해 보일수록 오히려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시가 여러 갈래로 해석될 수 있듯이 그렇게.이외수 씨가 살고 있는 강원도 화천의 감성마을에서 후배 소설가 하창수 씨와 대담한 내용을 엮은 책은 예술 인생 세상 우주, 이런 식으로 분류돼 있습니다.

‘감성마을에서 마음의 향기를 듣다’라는 프롤로그가 알려주듯이 책에는 좋은 말이 많습니다.

‘트위터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외수 씨의 짧지만 선명한 아포리즘이 곳곳에서 빛납니다.

그가 태어났고 지금도 살고 있는 자연, 가난과 고통,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온 갖가지 열등감이 그에게 샘솟듯 새로운 말을 자아내게 하는 것 같습니다.

고통과 자살충동을‘존버’ 정신으로 끝내 이겨낸 사람답습니다.

그 많은 말 중에서도 내 눈을 끄는 것은 글과 예술에 관한 언급입니다.

실은 지금까지 그의 작품은 읽은 게 거의 없습니다.

목욕도 잘 하지 않는 지저분하고 괴팍한 작가, 기행과 파격의 작가, 무시로 트위터 글을 올리는 가벼운 작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엉터리 글과 맞춤법을 질타한 작가, 때로는 정치적 언설로 논란이 돼온 작가라는 게 그에 대한 대체적 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자연과 예술과 사랑을 강조하고 소통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인상을 바꾸게 됐습니다.

인용부호 없이 몇 가지를 옮겨보겠습니다.

서로를 사랑하고 행복하게 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보여주는 일이 예술이다,

독자들이 읽고 나서 “고맙습니다.”라고 하게 만들어야 한다, 사랑이 없으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문학은 조화를 위한 도구다, 예술이나 종교나 우주의 본질은 모두 사랑으로 동일하다, 만물을 사랑하는 가슴을 가지고 있는 자만이 만물의 영장이다, 먼지는 먼지라는 이름의 우주, 사람은 사람이라는 이름의 우주, 마음이 고통스러울 때 가장 좋은 것은 아기나 꽃을 바라보는 것이다...

책에는 달에 있는 지성체를 비롯한 우주의 생명체와 교신하고 대화하는 채널링에 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이외수 씨와 하창수 씨, ‘수’자 문중 선ㆍ후배로 보이는 이 두 작가의 기묘한 체험담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로서는 믿기 어렵고 별로 흥미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아마 채널링에 관한 이야기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소통을 하는 것이 중요하며, 우주와의 대화도 가능하다는 차원에서 집어넣은 것 같습니다.

내게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므로 흥미로운 대목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입니다.

바둑에는 ‘이 한 수’라는 게 있습니다.

지금 이 대목에서 두어야 할 수는 오직 이것뿐이라는 뜻입니다.

그 ‘이 한 수’를 찾기 위해 기사들은 머리를 싸매고 전체 형세를 두루 살피고 상대의 기세를 따지고 다음 국면을 골똘히 재봅니다.

그리고 수십 수 앞을 미리 읽습니다. 장기에는 외통수가 있습니다.

상대를 꼼짝 못하게 해 승리를 거두게 해주는 수입니다.

글에는 일물일어설이 있습니다.

하나의 사물, 한 가지 일을 설명하고 묘사하는 말은 단 하나라는 뜻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그 단 하나의 적확한 말을 찾기 위해 밤을 새우고 바장이며 노심초사합니다.

이외수는 왜 이외수일까?

본명은 따로 있는데, 하는 짓이 하도 외계인 같아서 ‘이외수’라는 이름을 얻은 걸로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은 외갓집에서 태어나 그런 이름이 붙게 됐다고 합니다.

두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까지 집을 나가버려 할머니 손에 자라난 그에게 유년시절은 가난과 고통으로 점철된 기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서 마음으로>를 읽으면서 나는 이외수가 ‘이 한 수’의 다른 이름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적확한 단어 하나, 꼭 들어맞는 독특한 비유를 찾기 위해 그토록 애쓰는 걸 보면서 느낀 점입니다.

그는 글을 쓸 때 작가가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한 가지는 생명력이 깃든 단어라고 말합니다.

기운생동(氣韻生動)! 사람이나 글이나 그림이나 기운이 살아 꿈틀거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작품세계에tj 큰 전환점이 된 장편 <벽오금학도>를 쓰는 데 5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새로운 작품을 쓸 때는 반드시 기도를 하며 스스로 철문을 달아 감옥을 만들고 글을 썼다는 말도 했습니다.

베스트셀러 작가로 인기가 높은데도 자신의 작품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다니 “다음 작품은 이전 작품의 퇴고다.”라는 말을 할 만도 합니다.

잘 쓰려 하지 말고 정직하게 쓰려고 하라,

어떤 대상에든 애정을 가져라,

대상과 나를 결합시키려고 애를 쓰면 좋은 표현이 나오게 된다는 그의 말은 글을 쓰는 사람들, 특히 학생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이런 자세와 다짐이 그야말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될 때 우리의 예술과 문학은 좀 더 나아질 것입니다.

이씨는 “부도덕한 사회는 대단한 부정이 저질러지는 사회가 아니라 진정한 가치의 탐구가 멈춰버린 사회다.” “정의는 현실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다.”라는 말도 했던데, 우리는 개인적으로 상처가 치유돼 마음이 평안해지기를 바라는 차원에서 더 나아가야 합니다.

옳은 것, 바른 것, 진정으로 가치있는 것을 마음이 늘 지향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글쓰기만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일에서 이런 마음이 정직하게 작용해야 합니다.

이 메시지까지 읽거나 이런 메시지를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마음에서 마음으로>를 읽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마음만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전체의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필자소개

임철순

1974~2012년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및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수상.

현재 한국일보 논설고문, 자유칼럼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천이백 인천복지방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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