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좌

  • [칼럼] 아베 총리와 언론자유의 한계

    일본의 ‘언론자유’에 대한 아베 정권의 인내가 언제 한계선에 도달할지가

    천이백 기자 (c122103@naver.com)    2013-10-29 08:40:36

  •  

한국인 상점이 밀집한 도쿄 신오쿠보(新大久保) 거리는 주말이면 야비한 민족차별 ‘혐한(嫌韓)’ 데모로, 때로는 이를 반대하는 시민과의 몸싸움까지 일어나, 난장판이 연출됩니다.

 국가의 체면을 구긴다고 정치권에서까지 문제가 제기되었지만,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는 ‘언론의 자유’를 앞세워 대응책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극우ㆍ국수주의자들을 자극하면 아베의 우경화 정책 추진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비아냥하는 사람도 있지만, 민주정치의 필수 요건인 ‘언론의 자유’와의 원만한 타협은, 국회에 절대 안정 정치기반을 자랑하는 아베 정권의 큰 숙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가을 임시국회에 제출한 ‘국가특정비밀보호법안’이 아베 정권 언론 대책의 첫 시험대입니다. 야당과 언론의 반론을 참작하여, 원안에는 없던 ‘국민의 알 권리’와 ‘보도의 자유’언급을 법안에 명기하도록 했습니다만, 국회 심의과정에서 상당한 저항이 예상됩니다.

 국가기밀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아베 정권이 추진하는 이 법안은 국가가 특정한 비밀을 누설 또는 보도하는 자를 최고 10년 형으로 처벌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조ㆍ석간을 합쳐 1,000만 부를 넘는 신문이 둘이나 있고 전후(戰後) 탄생한 상업 방송국이 가세한 일본 언론계의 정치적 영향은 막강합니다.

 게다가 인터넷의 디지털 매체와 ‘페이스북’등 SNS 관련 여론 활동도 대단합니다.

우리나라의 ‘아니면 말고’식 괴담(怪談)으로 이름난 매체도 있습니다.

 유력 언론과 여론에 밀려, 아베 총리는 오래전부터 구상해 오던 ‘강한 일본’을 위한 헌법 개정은 일단 접고, ‘헌법 해석의 변경’이란 편법으로, 집단자위권 등 재무장에 필요한 임시조치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론자유’의 한계에 대해서는 그의 정치철학이 조만간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입니다.

 1945년의 일본 패전은, 국가의 상징인 천황제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물론 아베 총리를 비롯해 천황을 종전과 같이 숭배하는 국수주의자도 아직 많지만, 천황에 대한 일반 국민의 인식과 태도는 크게 바뀌었습니다.

 천황이나 그의 조상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 나올 정도입니다.

 베스트셀러 애정소설 ‘실낙원(失樂園)’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의사 출신 소설가 와타나베 준이치(渡淳一)는 11세기 시라카와(白河) 천황의 적나라(赤裸裸)한 애정생활을 그린 소설 ‘천상홍련(天上紅蓮)’으로 일본 최대 월간 종합지 ‘분게이�주(文藝春秋)’의 독자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난 8월, 도쿄의 한 아파트 3층에서 창밖으로 뛰어내려 숨진 여가수 후지 게이코(藤圭子)에 관해 한 SNS 방송국이 괴담 비슷한 소문을 터트렸습니다.

 한 중년 부부가 운영하는 ‘트위트TV’가 그녀의 죽음을 새 주일 미국대사 캐롤라인 케네디 여사의 부임과 관련이 있다고 보도한 것입니다.

 보도의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1950년 일본 최초의 미인대회에서 ‘미스 저팬’에 뽑힌 야마모토 후지코(山本富士子)는 다음해 도미하여 당시 하원의원이었던 존 F. 케네디를 만나 아이를 가졌는데, 이 아이가 후지 게이코다. 11월에 캐롤라인 대사가 부임하기 전에 후지 게이코가 자살로 보이는 의문의 죽음을 맞았는데, 이 사건의 배후에는 미 정보 당국이 있는 것 같다.

 부정기적으로 뉴스를 내보내는 이 방송은, 이 후지 게이코가 현 아키히토(明仁) 천황의 황태자 시절 교분이 있어 아이까지 가졌으며, 평민 쇼다 미치코(正田美智子)가 아키히토 황태자와 결혼하기 전 쇼다는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와 알고 지내 아이를 가졌다는 소문도 같이 퍼트렸습니다.

 아직 생존해 있는 전 여배우 야마모토 후지코나 일본 황실에서 이 보도에 대하여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야마모토 여사가 1951년에 방미한 것과, 소설가 미시마의 전기(傳記)에 그가 한때 쇼다 여사와의 결혼을 생각했었다는 것은 이미 공개된 사실입니다.

 유튜브(YouTube)에 올린 뉴스를 보고 후지 게이코의 한 팬이 황당무계한 소문이라고 삭제를 요구하는 댓글을 달았으며, 여러 사람이 이 뉴스를 내보낸 핫토리 준지(服部順治)를 미친 사람이라고 비방하는 글을 달았습니다.

 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이 방송 내용은 인터넷에서 삭제되지 않았습니다. 이 방송이 내보낸 뉴스 가운데는 아베 총리와 천황은 먼 친척관계로 그들은 국제 금융 마피아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것도 있었습니다.

 진위는 고사하고, 이런 민감한 뉴스를 그대로 내보내는 방송국을 언론자유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다 해서 내버려 두는 일본정부의 언론 정책이 알쏭달쏭합니다.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의 1920년대에 방종한 학자와 언론이 <천황의 자리는 헌법상 국가 통치의 한 기관이다>는 ‘천황기관설(天皇機關說)’등으로 우익과 군부를 자극하여, 결국 일본을 파국으로 몬 역사를 가진 일본입니다.

 인터넷 주변을 이런 미확인 소문이 떠돌아다니는 일본의 ‘언론자유’에 대한 아베 정권의 인내가 언제 한계선에 도달할지가 궁금합니다.

 이 방송의 홈페이지에는 그들이 추천하는 유사 방송국이 10여 개나 나열되어 있습니다.

그들에 아베 정권이 어떻게 대응하느냐를 보면 일본 민주정치의 내일을 예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필자 :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

 

천이백 인천복지방송 기자
c122103@naver.com
천이백 기자가 쓴 기사 보러 가기

주간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