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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스트레스 무서워

    순간 기억이 끊기며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천이백 기자 (c122103@naver.com)    2013-11-21 17:3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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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 몸엔 이상한 현상이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작년 가을까지만 해도 없었거나 자주 일어났던 일이 아니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올해 들어 부쩍 깜짝깜짝 놀라곤 하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잠깐씩 기억이 끊어지는 것이 마치 만취한 이후 잠깐동안 완전히 기억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우선 자주 집 자물쇠를 잠그지 않고 외출하는 것, 자동차 시동을 끄지 않고 내리는 경우가 잦아졌습니다.

 내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는 다행히 나와 같은 사람을 위해서 시동을 끄지 않으면 차 문을 잠글 수 없도록 시동을 끄라는 신호가 울리니 고마울 적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시동을 번번이 끄지 않고 내리는 일은 작년에도 거의 없었던 현상입니다.

 그뿐 아니라 쇼크를 받은 일은 서양란에 물을 주다가 생긴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평상시 매주 수요일이면 꼬박꼬박 화분에 물을 주곤 했는데 어느 수요일 아침에 물을 준 화분의 서양 란 뿌리가 오후에 하얗게 변해 있었습니다.

 이게 웬일인가 했더니 물 대신 우유를 부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것저것 전례 없이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아 자주 기록을 하고 그 기록을 매일 아침 챙겨 보고 하는 것은 이제 버릇이 되었습니다만 그래도 순간 기억이 끊기며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쓰는 과도를 찾지 못해 수십 분간 여기저기, 침실 서재까지 뒤지고 혹시 지난번처럼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렸나 했더니 칫솔 통에 꽂혀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이 초기 치매 증상이 아닌가, 조기 치매 환자들이 점점 많아지는 경향도 있어서 가정의의 진료를 받으러 갔습니다.

 가정의는 스트레스성 질환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뇌가 견딜 수 없어져 마치 치매처럼 무얼 잊어버리거나 멍해져 평상시의 뇌 기능에 문제가 생긴다며 스트레스 전문의의 진단과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난봄에 받은 뇌 검사에 치매증상은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온 나의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쳤습니다.

 웬만한 강심장이거나 신경세포가 질기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직업 전선에서 섬세한 내가 받았던 스트레스는 형언할 수 없는 것이었고, 쉬어야 할 가정에서조차도 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에 아마 스트레스가 계속 쌓였을 것입니다.

 스트레스가 사람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경험했건 기억이 있어 나는 가정의의 말에 공감하여 스트레스 테스트를 받기로 했습니다.

 20년 전 한국에서 일어난 일인데, 업무 중인 나를 찾아온 오랜 지우이자 신문사의 여기자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와의 대화 중 느닷없이 목을 도끼로 토막 내는 듯 통증이 찾아왔습니다.

머리를 조금만 움직이거나 말을 하느라 입을 달싹이기만 해도, 걷거나 팔을 쓰기 위해 몸체가 살짝 흔들리기만 해도 칼로 쓱쓱 목을 난도질하는 것처럼 인간의 힘으로는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머리를 흔들어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던 것입니다.

 난 그때 ‘단말마의 비명’이란 뜻이 그런 경우를 두고 일컫는 말이란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자와 함께 종합병원에 달려가 CT 촬영을 마치고 의사의 진단을 받을 때까지도 계속 비명을 질렀습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쳐다보는 것도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 새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촬영 후 이상했던 것은 나를 정신신경과 의사에게 진료를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한 것은 정신신경과 의사가 내게 던진 두 번째 질문이었습니다.

처음엔 직업을 물어보더니 두 번째는 현재 집에서 동거하고 있는 가족관계를 물었던 것입니다.

 솔직하고 간단한 나의 대답에 의사가 처방해준 약을 먹기 시작하자 통증은 줄어들기 시작했고 간신히 집에 돌아와 누운 채 움직이지도 못하고 며칠 간 약과 죽만 먹었더니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혼절할 만큼 무섭던 통증이 정신신경과 의사가 준 약을 먹고 사라졌다는 것, 그 통증이 스트레스에서 왔다는 의사의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사실이었으니 그 당시 내가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내 몸 안의 면역체가 더 이상 견뎌낼 수 없어지자 나를 지켜주어야 할 면역체가 오히려 내 몸을 공격함으로써 경고를 울린 것이지요. 반성하여 네 몸을 아끼라는 뜻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정신신경과 의사의 저서, ‘뇌력혁명’이란 책의 광고 서문에서 발췌한 글이 요즘의 내게 큰 공감을 주었습니다.

 그의 글에 의하면 책임감이 강한 사람은 뇌 피로에 잘 빠진다, 특히 현대병이라는 무서운 생활 습관 병은 결국 뇌 피로에서 시작된다, 뇌를 가장 피곤하게 만드는 스트레스는 5감으로부터 느끼는 불쾌한 자극인데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모든 스트레스성 자극이 5감을 통해 뇌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청각, 시각, 후각 등의 불쾌한 자극으로 가득 찬 도시 환경은 그 자체가 뇌 피로의 주범이지만 복잡한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빼놓을 수 없는 만만찮은 뇌 피로의 요인이며, 뇌 피로는 안 써도 될 일에 뇌력을 낭비하는 데서 온다, 뇌력을 아끼자, 넉넉하게 비축해둬야 필요한 일에 전력투구할 수 있다, 그래야 활력이 넘친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는 뇌를 너무 혹사했습니다. 내 몸의 항체가 오히려 나를 공격하게 만든 모든 원인은 내게 있었습니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은 뇌 피로에 잘 빠진다는데 나는 책임감도 강하고 내 말에 대한 약속도 철저합니다. 민폐를 아주 싫어합니다.

 시간 약속에 늦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적당히 얼렁뚱땅 하지 못합니다. 작은 감사함 쯤은 잊어버리고 지나칠 수도 있는 것을 나는 꼭 잊지 않고 챙기려 하니 그것도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싫은 사람 앞에서 거짓으로 친한 척 하는 것도 서투릅니다. 닭살이 돋는 걸 어찌하겠습니까?

 좀 적당히 살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하니 요새 유행하는 우리말로 ‘까칠하게’ 산 탓일 것입니다. 그러니 내 병은 내 성격에서 기인한 것이지요. 우리가 어려서는 참고 살라는 교육만 받았습니다.

 그러나 참는 것만이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능사가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처음 스트레스 발병 후 20년이 흘렀고 그 20년 동안 쌓여온 스트레스들이 다시 내 몸을 또 공격하고 있어 요즘 치매 같은 현상이 일어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직업에서 받은 고통은 없지만 아마 그동안 자식들로 인하여 받은 충격이나 걱정들, 만나지 말아야만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참고 견뎌온 것도 큰 몫을 차지한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요인들이 다르겠지만 내게는 대인관계가 가장 힘든 요인이라는 것을 요즘 깨닫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살아온 환경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토론토 한인 이민사회라는 특수 상황에서 만나 서로 실체를 모르며 친해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이런 관계는 무너지기 쉽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2000년도 이후로 이민 온 사람들과의 정서적인 교류는 쉽지않습니다.

 그 중엔 아름다운 사람도 있어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지속하는 경우도 있지만 신원이 확실하지 못한 이민자들이 학력을 속이거나 자신의 환경과 정체를 속임으로 한인사회의 선량한 교포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례들도 많습니다.

 나 또한 그런 사람들에게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입은 적이 더러 있었으니까요.

 나는 이번에 나의 뇌 건강을 지키기 위해 대략 만나지 않아야 할 사람들과 만나야 할 사람들에 대한 선을 긋기로 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예민한 나의 뇌가 터질 것 같아서입니다.

 론 오래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이지만 고심 끝에 내린 결정 후 나는 마음의 평온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고 머리도 조금은 덜 깨질 것 같습니다.

 자식들이 주는 스트레스는 천륜이니 어찌할 수 없지만 색깔이 다르고 취향이 다른, 내가 포용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멀리하는 것이 죄는 아니니까요. 그래서 이제부턴 누구든 포용해야만 너그러운 사람이니 그리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던 위선과 어리석음으로부터 진정 탈출하여 좀 편하게 살고 싶습니다.

 필자소개

 오마리

 미국 패션스쿨 졸업, 미국 패션계에 디자이너로 종사.

현재 구름따라 떠돌며 구름사진 찍는 나그네.

 

천이백 인천복지방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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