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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12월은 다 내려놓는 달

    내려놓는다는 것은 물건 자체나 물건에 대한 욕심, 지난 일에 대한 미련을 떨쳐내려는 마음

    천이백 기자 (c122103@naver.com)    2013-12-02 13: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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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쯤 전에 ‘다 내려놓은 고양이’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왔습니다.

사람처럼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앉아서 물끄러미 창밖을 주시하고 있는 모습(사진 1)입니다.

 고양이 옆에서는 노란 새끼 오리 인형이 고양이와 같은 자세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뭔지 좀 어색해 보이기도 하고 너무 뚱뚱해 고양이도 모형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 사진 이후, 고양이가 사람처럼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서 꼬리만 가끔 흔들며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 등 ‘다 내려놓은 고양이’ 사진과 동영상이 잇달아 인터넷에 뜨고 있습니다.

 동물들도 사람처럼 뭔가 깊은 생각을 해야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그들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고, 말해봐야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괴로움이 있을 것입니다.

 통하지 않으니 오죽 답답하겠습니까?

우리 집 개 봉필이는 작년에 죽었지만, 3년 전에 내가 찍은 모습(사진 2)을 볼 때마다 그놈이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정말 궁금해집니다.

 사진을 찍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고 턱을 고인 채 하염없이 엎드려 있던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다시 12월입니다.

한 해의 이 마지막 달을 빼어난 시인인 인디언들은 뭐라고 불렀을까?

 다른 세상의 달(체로키 족), 침묵하는 달(크리크 족), 늑대가 달리는 달(샤이엔 족), 나뭇가지가 뚝뚝 부러지는 달(수우족), 무소유의 달(퐁카 족), 이런 말이 눈에 띕니다.

 11월을 ‘모든 게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하는 인디언들이니 12월에 대한 표현은 한층 더 감수성이 높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일본인들은 12월에 대해 점잖은 스승조차 뛸 만큼 바쁜 달이라는 뜻에서 시와스(師走)라고 부른답니다. 그럴듯하지만 인디언들의 표현이 더 인상적입니다.

 나는 12월을 ‘다 내려놓는 달’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실제로 다 내려놓을 수 있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생각하는 동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번 12월에는 이런 말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연말 대목을 만나 더 바빠진 술꾼이라 해도 그 고양이나 봉필이처럼 뭔가 골똘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집니다.

 다시 한 해를 보내는 이즈음은 밖을 내다보면서 안을 들여다보는 눈길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물건 자체나 물건에 대한 욕심, 지난 일에 대한 미련을 떨쳐내려는 마음일 수 있지만 무소유니 비움이니 하는 것은 쉽게 이룰 수도 없고, 쉽게 할 수 있는 말도 아닙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런 것보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새로이 하겠다는 다짐으로 읽으면 더 의미가 있고 실제적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최근 60대에 접어든 두 여성으로부터 괴로운 인간관계에서 벗어나는 편함과 홀가분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동안 생업이나 체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했던 사람들을 멀리하게 되자 마음이 그렇게 편하고 가벼울 수 없더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누구나 잘 알다시피 한국사회는 사람에게 부대끼고 시달리는 게 그야말로 큰일이고 큰 어려움인 사회입니다. 좋든 싫든 이미 소속된 일정한 관계망에서 벗어나면 유형무형의 불이익과 불편을 겪게 됩니다.

 두 여성 중 한 분은 불편한 인간관계가 건강까지 해치는 스트레스의 요인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내색하지 않고 살아오다가 이제야말로 싫은 사람들을 내려놓았다고 합니다.

 또 한 분은 하는 일을 바꾸면서 자연스럽게 관계 단절과 해소를 통해 스스로 편해졌다고 합니다.

특히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라”가 아니라 “다리를 뻗으면 누울 자리가 생긴다”는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들, 늘 갑으로 대접받아야만 하는 사람들과 더 이상 만나지 않아도 돼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최근 읽은 박완서의 <노란 집>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아아, 나는 너무 많이 가졌구나. 천당까지는 안 바라지만 누구나 다 가는 저승문에 들어설 때도 생전에 아무것도 안 가진 자는 당당히 고개 들고 들어가고 소유의 무게에 따라 꼬부랑 꼬부랑 허리 굽히지 않으면 버러지처럼 기어 들어가야 할 것 같다.’

 가진 것에 대한 애착이 점점 시들어지다가 이제는 짐스러워서 오히려 버리는 마음을 이야기한 글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책이나 옷, 살림살이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박완서 씨가 나이 차에 관계없이 엄마처럼 따랐던 박경리 씨의 유고 시집 제목은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였습니다.

 ‘옛날의 그 집’이라는 시에 ‘모진 세월 가고/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진술이 나옵니다.

 이들은 왜 노란 집, 옛날의 그 집에 기대어 버리고 가는 홀가분함을 이야기한 것일까요?

 집이란 존재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겠지요. 나 자신의 공간, 나와 가족들의 공간인 집에는 나날의 생활과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저마다 집 한 채를 짓고 삽니다.

일가(一家)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사람은 누구나 다 자신만의 집이 있습니다.

 그런 집을 떠날 때 어떤 마음과 자세로 작별해야 하는지를 한국문학사에 빛나는 두 작가가 잘 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들에 비하면 나는 아직 젊고(!) 앞에서 예로 든 두 여성에 비하면 나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지금 뭔가 내려놓고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아직도 여전히 계속 쌓아가고 있는 상태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나에게 12월은 솔직하고 엄밀하게 말하면 ‘다 내려놓는 달’이 아니라 ‘내려놓는 것을 생각해보는 달’입니다.

 인간관계든 무엇이든 쌓아 올리기에만 주력하지 않고 내려놓는 것도 함께 생각하고 싶다는 게 올해 12월의 나의 주제입니다.

 또다시 춥고 모진 겨울을 나기 위해 스스로 잎을 떨궈 다 내려놓고 있는 나무들을 또다시 바라보면서, 생의 유턴지점을 벌써 통과한 나이에 이런 생각을 새로 하고 있습니다.

 필자소개

 필자 임철순

1974~2012년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및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수상.

현재 한국일보 논설고문, 자유칼럼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천이백 인천복지방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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